당연한 일이지만, 나이를 먹어가며 육체와 정신의 내구성이 떨어져가고 있어. 특히 몸은 아프거나 내 맘대로 움직여주지 않을 때 더 의식하게 되지. 젊을 때야 뇌와 몸을 동기화하는 것이 거의 실시간이었으나 지금은 그 시간이 조금씩 길어지니 아 이게 ‘몸’이었지, 를 새삼 느끼는 듯 해.
우리는 몸과 건강을 돌보는 데 관심이 많지.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몸만이라도 건강하면 어떻게라도 살아갈 수는 있으니까. 그 몸이 보기 좋다면 더 유리할 테고 말이야. 아름다움을 자신의 몸에 지닐 수 있다는 건 자기만족이든 보여주기 위한 것이든 어느 쪽이든 기분 좋은 일이지. 그것을 둘러싼 각종 도구들, 산업들, 노력들, 고민들, 과시들, 열등감들은 항상 내 상상력의 부족함을 절실히 느끼게 하지.
그렇다면 정신이나 영혼은 어떤가. 이것들이 단지 뇌와 호르몬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관심 없는 얘기겠지만 말이야. 스스로에게 묻지. 나는 정신을 얼마나 돌보고 있나? 공부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지적知的인 삶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사는 것이고 무엇을 위한 건가?
고전을 포함하여 무수히 많은 지식의 정수들이 그 ‘지적인 삶’의 결과물들이겠지만, 늘 그렇듯이 단순무지하게 지적인 삶에 대해 직접적으로 다룬 책들을 찾아 읽어봤어. 《지적 생활의 설계》, 《지적생활의 발견》, 《지적 생활의 즐거움》 등.
‘생활’과 ‘삶’의 차이인지는 모르겠으나 실존적 결단의 차원이라기보다는 자기계발이나 라이프스타일에 가까운 내용들이더라. 선생님께서 추천하신 많은 책들 중에서 이 주제에 가장 가까운 책은 《독서의 학》이라고 (혼자) 생각했는데, 시작만 하고 끝은 못 냈어. 예상했던 내용과 많이 달라서 더 어렵게 느껴졌던 것 같아. 다시 도전해야지.
결국 고민은, 몸과 정신 어느 하나 내버려두지 않고 함께 돌보는 삶을 어떻게 살 수 있을 것인가로 귀결돼. 지금까지의 결론은 움직임, 운동. “사람이 몸을 단련하거나 건강을 위하여 몸을 움직이는 일” 말고 “시간의 경과에 따른 물질 존재의 온갖 변화와 발전”이라는 의미로서의 운동. 말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어느 방향으로든 몸과 정신을 계속 움직여야겠다고 생각했어.
내 나이를 정확하게 얘기한 적은 없는 것 같은데, 젊은 척 하려던 건 아니고 한국에선 그걸 권력처럼 과시하는 경우도 있어서 말이야. 물론 요즘은 그 권력이 작동하는 경우가 드문 것 같지만. 아무튼 이제 건강을 챙겨야 할 나이가 되었음을 깨끗이 인정하고, 혈압계와 혈당 측정기를 샀어. 데이터 기반으로 건강을 관리하기 위한 기초 도구라고 생각해서지. 몸의 움직임은 우선 허벅지와 무릎 근육 강화를 위해서 스쿼트부터 시작하기로 하고.
라이프스타일을 넘어선 지적인 태도와 삶을 지향하는 것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은 없어. 거기에다, 내가 아는 것을 공유(더 적합한 단어가 있었으면 좋겠다)하기, “내가 아는 것을 남이 모른다고 무시하지 않기”(출처가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이해하는 것을 남이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할 수 있게 노력하기, 학문적인 성취를 이루진 못하더라도 지적인 것을 존중하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리기 등을 더할 수 있겠네.
가만히 따져보면 내 몸에는 나만의 것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아. 부모가 처음 만들어줬고 다른 생명을 먹으면서 계속 다시 만들어가면서 살아가고 있는 거잖아. 정신은 어떨까? 역시 다른 사람의 말, 책, 행동, 정신, 대화 등을 통해 만들어지긴 하지만 어떤 방향으로의 정신을 만들지는 내 의지대로 할 수 있지 않을까? 몸을 만들 듯이 정신을 만든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