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바야흐로 손 대면 톡하고 터질 것 같은 닷컴버블 시대. ‘사이버 가수 아담’의 뒤를 따라 ‘사이버 아파트’ 사업을 하는 회사에 다닐 때였다. 컨텐츠 일이 하고 싶어 들어갔던 회사였지만, 사공이 많은 회사여서 제대로 일을 할 수 없었다. 불행했다고 느끼는 시절은 잘 기억하지 못하지만 같이 일했던 두세 명은 기억하는데, 그 중 한 명을 오늘 만났다. 이십여 년 만에.
‘추앙’ 받았다고 할까. 그 시절에 내가 좋은 영향을 주었단다. 자신의 숨겨진 면을 볼 수 있게 해줬다고. 나와 있었던 일들을 얘기해주는 데 난 거의 기억이 안 난다. 그때면 난 똥오줌도 못 가릴 때인데 그런 기특한 말도 했구나 싶은 일도 있었다(고 한다). 그 (한 살 많은) 형 덕에 오늘 자존감이 많이 올라왔다. 그때 내가 내 가능성을 억누르고 있는 것 같이 느꼈단다. 동의. 난 다섯 살 때부터 그렇게 살았으니까. 어른들로부터 나이에 비해 어른스럽다, 의젓하다고 칭찬 받은 탓이었을까, 그렇게 가면증후군을 타고 난 것일까.
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이십여 년 전 일들을 어제 일처럼 듣는 건 기분 좋은 일이었다. 물론 좋은 얘기들이었으니 그랬겠지만. 동시에, 난 참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었구나라는 생각도 들고 말이다. 사람을 좋아하느냐 그렇지 않으냐 중에 하나만 대답하라고 한다면 ‘그렇지 않다’. 그렇다고 인간을 혐오하는 건 아닌데, 만나서 의례와 가식을 갖춰야 하는 시간이 싫다고 해야하나. 오늘 같이 두 또라이가 벌거벗고 만나는 건 즐거울 뿐이다.
너는 태국 빠이에 꼭 가봐야 한다는 얘기도 듣고, 알레프라는 가수, 터널이라는 술집도 알게 되고, 만년필만 다루는 유튜브 채널을 만들어 보라는 아이디어에 솔깃해졌고, 나도 나름 괜찮은 놈이라는 생각도 갖게 됐고, 남들이 그 생각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어쩌라고?’). 그리고 술김에, 한국 뉴스레터들은 O나게 이성적이고 예의 바르다는 생각이 들면서, 앞으로 싸가지가 없어-져야겠다고 생각하며 내 안 흑염룡의 수염을 뽑았다.
그리고, 알레프ALEPH, 너무 좋은데 사람들이 모른다고, 같이 띄워보자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