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국민학교’ 앞이든 꼭 세트처럼 있던 것이 주산·암산, 웅변, 피아노, 서예 학원들이었는데, 나도 두 개 정도 다녀봤어. 그 중 주변 아이들이 가장 적게 다녔던 곳이 서예 학원으로 기억되는데 ‘성적 향상’과 별 상관은 없지만 주의가 산만하다고 생각되는 애들을 차분하게 만들어 준다고 생각하거나(이것 역시 성적 향상을 위한 것?) 이미 서예를 즐기고 있는 부모들이 주로 보냈던 것 같아.
떠올려보면 국민학교 때부터 글씨를 잘 쓰는 것에 대해 아버지가 강조하셨던 것 같아. 선친이 한때 서예를 배우셨는데 그때 집에 돌아다니던 문방사우들이 있었어. 대나무 발 같은 데 보관되어 있는 각종 굵기의 붓, 용이 조각된 벼루, 닳아서 짧아진 먹과 그 먹을 갈 때 나는 은은한 먹향, 두툼한 화선지 뭉치 등. 왜 배우셨는지 물어보지는 못했지만 손글씨가 자신을 드러내는 중요한 수단이었을 때니까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 불행한 시절을 만나 뜻을 펼치진 못하셨지만 나처럼 하고 싶은 게 많은 분이었던 것 같아.
언젠가부터 나도 서예에 선망을 갖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가 기억 때문인지 환경 때문인지 유전 때문인지는 모르겠어. 배워야지, 하고 학원만 알아보다가 수십 년이 흐르고 ’그래, 서예보다는 실용적인 캘리그라피가 낫겠어’라고 생각이 바뀌어 혼자 해보겠다는 생각으로 책(!), 붓펜 등을 사서 시도해 봤지만 실패에 실패를 거듭.
그렇게 또 시간은 흘러, 만년필로 많이 쓰다보면 글씨도 좋아지겠지라는 생각으로 만족하고 있었는데, 작년에 합정동 회사 근처에서 캘리그라피 학원을 발견했어. 검색을 해보니 실력있는 작가분이 운영하는 곳이더라고. 옳다구나, 수강 상담을 하고 언제 등록할까 타이밍을 보고 있었는데 근무지가 여의도로 변경되며 무산되었지.😩
그러나 올해 시작과 함께 다시 합정동으로 복귀했네. 바로 수강 등록을 하고 오늘부터 시작했어. 일주일에 한 번, 두 시간. 오늘은 캘리그라피의 가장 기초인 붓 쓰는 법을 배웠는데, 너무 좋다. 붓 끝을 놀릴 때 손에 전해지는 느낌, 사라지는 잡념들. 원장님이 직접 체본을 써주며 가르쳐줄 땐 내가 저걸 어떻게 해, 라고 생각했다가 막상 덤벼들면 예전에 아무것도 모르고 붓을 들었을 때와는 다른 글씨가 나오니까 너무 좋다.
캘리그라피를 배우는 다른 이유는 문구 컨텐츠를 만들기 위한 것도 있어. 문구, 특히 만년필 등의 펜에 대해 다루면서 글씨를 못쓰는 건 스스로 용납할 수가 없어서 말이야. 취미로 사두었던 각종 펜들의 성능도 최대치로 발휘해 보고 싶고.
앞으로 많이 연습해서 괜찮아지는 글씨들을 종종 올려볼게.
초등학교때 서예학원을 다녔던 기억이 나네요. ^^자신만의 글씨를 찾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