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첫째 아이 만년필 입문 시키기
페이스북 그룹이나 페이지에 마구잡이로 가입했더니 뉴스피드에 노이즈가 너무 많아서 아이디를 새로 만들어서 쓰고 있어. 지금은 친구, 페이지, 그룹을 신중하게 선택하고 있지. 최근 오랜만에 가입한 곳은 🖋'만년필을즐기는사람들' 그룹이야. 다른 곳도 그렇지만 여기도 주로 본인의 만년필 사진, 만년필로 쓴 글이나 그린 그림 등이 올라와. 입문용 만년필 추천해달라는 사람, 만년필을 처음 써봐서 조심스럽다는 사람, 만년필을 떨어뜨려서 펜촉이 휘었는데 수리할 곳을 찾는 사람 등등 익숙한 모습이지.
만년필 종류가 참 많지만 제일 많이 올라오는 사진은 몽블랑과 라미 만년필이야. 브랜드 파워와 마케팅의 힘이랄까. 써 본 브랜드는 몇 개 안 되지만, 난 닙(nib, 펜촉)이 단단하면서 종이에 긁히는 느낌을 즐기는 편이야. 잉크가 잘 흘러 나오지 않아서 긁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지. 아무래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만년필이 오로라(Aurora)여서인 것 같아. 강성닙이 특징으로 꼽히는 브랜드야. 그래서 사람들이 그렇게 좋다고하는 몽블랑 146은 너무 미끄럽게 느껴져서 나한테는 안 맞더라고(개인 취향). 그래서 아내 쓰라고 줬어.
만년필을 쓸 때의 이 묘한 즐거움을 내 아이들도 느껴봤으면 싶어서, 이번에 고등학생이 된 첫째 아이에게 만년필을 하나 사줬어. 내가 쓰던 것 중에 하나를 줘도 됐지만, 고등학교 새출발이니 새 만년필로 시작하라고 새것으로 사줬어. 뭘 사줄까 생각하면서 몇 가지 기준을 세웠어.
예쁠 것. 팬시상품처럼이 아니라 품위 있게.
잃어버려도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의 가격대.
0.5 샤프나 볼펜을 쓰던 사람들이 너무 굵게 나온다고 느끼지 않을 정도의 세필. 그래서 EF (Extra Fine) 닙으로 선택(결국 만년필을 오래 쓰다보면 굵은 것 찾게 됨).
학교에서 잉크가 떨어져도 바로 교체할 수 있는 카트리지 방식.
마케팅 거품이 없는 브랜드.
이 기준들로 선택한 제품은 카웨코 스튜던트 60's 스윙 만년필이야(특정 판매업체 광고가 될까싶어 공식홈페이지로 링크함. 국내에서 많이 팔고 있음). 복고풍 디자인에 단단하고 쥐기 편해 보이는 구조 때문에 고르게 됐어. 카웨코는 한 번도 안 써봤으니 운에 맡기는 부분도 있었지. 검색을 해보니 기본은 하는 곳 같더라고.
물건을 받고 시필을 해봤는데 예상보다 괜찮았어. 휘청거리지 않는 단단한 느낌, 스틸 닙이지만 14K 닙보다 조금밖에 안 떨어지는 필감, EF 굵기임에도 잉크 흐름이 좋았어. 최저가가 6만원 대이니 입문용으로 충분히 잘 고른 것 같아. 첫째 아이에게, 이거 엄청 좋은 만년필이라고 생색내며 줬었는데, 아까 가서 요즘 만년필 쓰냐고 물어봤더니 쓴다더군. 좋아, 걸려들었어. 열심히 써라. 아빠 비싼 만년필 다 쓰게 해줄게(몇 개만 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