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초에 만년필샵에 제작주문해서 5, 6개월 후에 받은 만년필이 있었어. 오로라 88 광물 시리즈 중 아주라이트 모델이었지. 몸체가 투명한 데몬스트레이터이기도 해. 아주라이트(azurite)는 한국어로는 남동석이라는데, 정말 예쁜 푸른색의 광물이네. 그래서 만년필에도 이런 파란색을 썼나봐. 사실 주문할 때는 몰랐던 사실이야. 그냥 이 파란색이 제일 맘에 들었을 뿐.
그런데 이 녀석은 처음 왔을 때부터 잉크 흐름이 별로 좋지 않고 닙이 종이를 심하게 긁는다 싶을 정도로 거칠었어. 그래도 쓰면서 길들이면 괜찮아지겠지, 하고 그냥 썼네. 그러나 만년필의 가장 큰 장점은? 힘, 필압을 주지 않아도 슬슬슬 부드럽게 써진다는 거잖아. 그런데 이건 그렇게 안 써지니까 손에서 놓게 되더라고. 더 잘 써지는 펜은 옆에 많으니까. 그렇게 우리 사이는 점점 멀어지고, 가끔 만년필들 체크할 때나 뚜껑을 열어 써보고는 ‘역시 얘는…’ 이러고 다시 내려놓곤 했지.
그러다 얼마 전에 갑자기 너무 억울한 생각이 드는 거야. 적은 돈을 주고 산 것도 아니고 너무 예쁜 펜인데 이렇게 썩힐 수는 없다! 무상수리 기간이 지났지만 펜을 산 곳에 문의를 넣어봤지. 그랬더니 닙 단차 정도는 교정할 수 있는데 그 외의 문제는 고향에 보내야 할 수도 있다는 거야. 음… 사실 처음으로 만년필 수리를 받았을 때 나도 못 가본 이탈리아에 내 만년필을 보냈었거든. 한정판이라고 수리비도 많이 깨졌는데 그 펜은 지금도 몸이 성치 않아 잉크를 흘리고 있지. ‘아 부디 닙 교정만으로 해결됐으면 좋겠어’라는 마음으로, 더는 다치지 말라고 완충재로 꽁꽁 싸매서 수리를 보냈어.
두 주 정도 걸릴 수 있다고 했는데 한 주도 안 되어서 오늘 왔네. 😭와, 감동. 완전히 다른 만년필이 돼서 돌아왔어. 닙 교정한 분이 테스트한 종이까지 같이 보내줬는데, 이것은 신뢰감 그 자체로 가득 찬 낙서 한 장이랄까?
그래서 혹시나 나와 같은 문제를 겪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수리 보내시길. 국내 주요 만년필샵에서 산 분들은 해당 샵이나 국내수입유통사에 보내면 대부분 해결해주니까 별로 고민할 필요도 없고, 병행수입샵의 경우에도 판매한 곳이 책임을 가지고 운영하는 곳이라면 마찬가지로 해결이 될테니까. 결론은, 잘 안 나오는 만년필 때문에 고민하지 맙시다. 고쳐 쓰면 됩니다. 단, 고향 보낼 때는 조심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