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 ’고구마’와 ‘사이다’ 두 가지 알고리즘의 반복
〈기획회의〉 545호(2021.10.5)의 이슈는 ‘웹 플랫폼은 어떻게 비즈니스가 되었나’였는데, 그 중 이융희 청강대 교수의 ‘감정 플랫폼을 주목하라’가 가장 읽을만 했어.
웹툰은 많이 봤지만 웹소설은 읽어본 게 하나도 없어. 이십 대부터 서브컬처에 대한 선망이 있었고 《뉴로맨서》 같은 해외 SF에 열광했었지. 웹소설도 몇 번 읽어보려고 시도했었는데 처음 몇 장을 못 넘어가겠더라. 내가 알던 소설과는 너무 달랐고 시간낭비처럼 느껴졌어. 그때 왜 그렇게 느꼈는지 이융희 교수의 이 글을 읽고나니 좀 이해가 가네.
아래는 모두 해당 글을 요약, 인용한 거야. 그대로 인용한 게 아니어서 따옴표나 인용표시는 안 했어. 웹 관련 일을 하고 있는 분들은 이번호 구해서 읽어봐도 좋을 것 같아. 'MZ세대 연구 보고서' 같은 것보다 젊은 세대를 이해하는 데 더 도움이 될 것 같네.
우리가 흔히 ‘장르’라고 알고 있는 웹소설의 분류는 서사나 화소에 대해 이야기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작은 단위의 감정들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기 때문. 즉 기존의 판타지, SF, 로맨스 같은 고전적 분류는 서사와 구조, 형식에 따른 분류였겠으나 최근 장르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수많은 움직임들은 ‘사이다’ ‘고구마’ 등의 감정변화와 자신의 감정을 건드리는 최소한도의 코드에 의해서 분류되고 있기 때문.
재미있는 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스토리 산업, 또는 스토리텔링의 관점, 또는 이야기의 힘 등으로 여겨졌던 웹소설 연구의 중심이 서서히 ‘반서사적’이라는 평으로 옮겨간다는 점.
김준현, 《웹소설 작가의 일》에서는 웹소설 장르판타지의 플롯을 “주인공이 목표를 이룰 수 있는 상태(회귀, 전지, 초현실적 능력 등) → 사실상 라이벌이 아니지만 라이벌이라고 착각하는 이들의 무용한 도전 → (주인공이) 목표를 이룸”으로 분석하고 이러한 플롯을 반서사적이라고 단평함.
진문, 《밀리언 뷰 웹소설 비밀코드》에서는 코드의 예시를 ‘회귀’ ’S급’ ‘역대급’ ‘악녀’ 등으로. 독자의 욕망과 소비패턴이 합쳐진 개념. 이 코드가 동시에 서사 속에서 ‘주인공의 힘’이자 ‘강력함’이고 서사 전체를 이끌어가는 동력 묶음임.
아즈마 히로키의 ‘데이터베이스 소비’ 개념. 소비자가 콘텐츠 속 캐릭터에게 허구적이며 페티시적인 욕망을 표현하는 파편적 기호가 ‘모에’. 소비자들은 텍스트의 서사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모에 요소의 존재 유무에 따라 콘텐츠에 맹목적으로 몰입하고 다시 모에 요소를 분해하고 데이터베이스 속에서 상대화 함. 이러한 경향은 1990년대 오타쿠 시장에서 개개 작품의 완성도보다 캐릭터의 매력을 중시하게끔 만듦.
개별 작품의 서사보다 내가 그 서사를 소비할 수 있느냐/없느냐를 파악하기 위한 기호적 도상이 중요함. 그러한 도상은 감정적 몰입의 가능/불가능 역시 결정함. 이러한 현상은 한국에서 이루어지는 장르의 소비 모습과 유사함.
오쓰카 에이지. 자신의 욕망을 바로바로 해결할 수 있는 ‘감정’이 사회의 제1자본으로 등극함. 감정만이 유일한 관계성으로 통용되는 제도가 성립하게 됨.
웹소설 작품을 ‘서사’ 단위로 살피는 것은 반쪽짜리 분석에 불과함. 웹소설은 대리만족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대중의 욕망을 자극하고,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감정 콘텐츠. ‘고구마’ ‘사이다’라는 두 가지 대중 콘텐츠의 비평적 용어를 보더라도 서사가 지향하는 바는 독자들의 결핍생성-욕망충족이라는 두 가지 알고리즘의 반복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