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 ‘새로운 쓰기의 등장’ - 〈기획회의〉 540호 중
출판 및 관련 문화에 대한 격주간 매거진 〈기획회의〉라고 있는데, 가끔씩 내가 관심 있는 주제를 다루는 경우에는 e북으로 사서 보고 있어. 이번 540호(2021.07.20)의 이슈가 ‘새로운 쓰기의 탄생’이어서, 이건 무슨 내용인가하고 사서 보게 되었네.
이 이슈에 대한 글은 모두 여섯 개가 실렸어.
새로운 쓰기의 등장 (이융희)
숏폼 콘텐츠 시장의 중심 ‘틱톡’의 문법 (장동선)
차세대의 글쓰기, 채팅형 소설 (디버스 대도서관)
UX 라이팅이란 무엇인가 (김강령)
유튜브 세계의 스토리텔링 (김겨울)
웹소설, ‘웹’에 가장 가까운 물리적 서사 글쓰기 (북마녀)
이 중에 첫 번째 글인, 이융희 교수의 ‘새로운 쓰기의 등장’만 우선 읽었는데 새로운 관점을 접할 수 있어서 좋았네. 요약해보면,
《젊은 독자를 위한 서브컬처론 강의록》의 저자인 우노 츠네히로는 ‘상상력을 채우기 위해서는 고전 소설보다 고전 영화를 보라’고 권했다는 데, 이 이야기에는 매체의 전회가 이루어지는 변모과정이 존재함. 영상이 단지 보는 것만이 아닌 영상을 ‘쓰고 읽는다’의 연속선상에 있음.
새로운 독해 방식을 사용하는 미디어에 영역을 빼앗기는 것은 형식이 정해진 ‘작품’들임. 오히려 사사로운 글쓰기의 형태와 영상제작은 오로지 ‘쓰기’라는 형식으로 비슷한 궤를 가짐. 사실 이런 시선 자체는 굉장히 보편적이고 낡은 것임. 그러나…
새로운 툴 쓰기를 굳이 호명한 이유는, 문자와 영상을 한 묶음으로 둔 채 ‘쓴다’는 행위 자체에 논의를 집중하고, ‘잉여’라는 키워드에 도달하기 위해서임.
틱톡, 유튜브, 게임방송 등의 콘텐츠에 정보값 비중은 무척 적고, 대부분은 한없이 잉여에 수렴함. 잉여 콘텐츠의 독법에는, 거시적 시각으로 이루어지는 원거리 읽기, 추상적 모델의 정립 필요함.
Khady Lame (일명 ‘한심좌’)는 ①기존 영상에 은폐되어 있던 ‘잉여’를 탈은폐시킴 ②‘틱톡’이라는 플랫폼 내 안티 콘텐츠임과 동시에 틱톡의 세계관에 역시 함께 매몰됨.
‘유튜브 렉카’, 거대한 세계관을 공유, 공공재인 코드, 문법들을 통해서 집단적 창작을 하는 채팅형 소설이나 웹소설의 방식들. 이처럼 다양한 매체에서 이루어지는 ‘쓰기’의 형태는 수많은 잉여 데이터를 모아 거대한 플랫폼이란 세계를 구축하는 일종의 대중민속적 행위. 여기서 중요한 지점은 이러한 ‘잉여’가 무엇을 보여주는가, 잉여들의 값이 교차하며 어떤 사회를 보여주는지의 포착임.
김곡, 《관종의 시대》. 결국 관종은 자신의 현실에 대해서 끊임없이 증명해야만 존재할 수 있음. 디지털 세계의 새로운 문화는 현실 사회의 진실과 실존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산재한 잉여를 기록하는 것임. 남는 것은 증명을 위한 데이터들로 가득 찬 데이터 더미, 그리고 그것이 저장된 플랫폼뿐.
극소수의 콘텐츠를 제외하면 대부분은 별다른 의미 없이 재미를 추구하는 잉여의 소산임을 알게 됨. 오히려 잉여로운 콘텐츠들이 새로운 ‘쓰기’ 플랫폼에서 수많은 좋아요를 받는 주요 콘텐츠였음. “이러한 현상을 한 꺼풀 벗겨내면 그곳에 텅 빈 자아와 현실만 존재한다.”
우리가 읽어야 할 것은 ‘잉여’라는 서사 그 자체이며, 수많은 잉여 조각이 만들어내는 거대한 모자이크의 형상. 오히려 그 형상이 지금, 여기의 현실임.